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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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지 않는다 — 물려받은 노트가 쓸모 있으려면
2026-05에 아버지의 작업 노트를 물려받은 이야기를 실었다. 물려받은 기록의 어려움은 읽는 게 아니라 누가 언제 알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엔 직접 만들었다 — 여기서는 아무것도 덮어쓰지 않는다. 틀린 것으로 밝혀진 줄도 그대로 남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가 읽힌다.
2026-04에 의사가 진료 흐름 도구를 만든 이야기를 실었다. 그 글은 도구가 무엇을 하지 않는지를 말로만 적었다. 이번엔 코드에 그었다 — 이 서버에는 판단을 내는 도구가 없고, 판정처럼 들리는 단어를 내보내려 하면 예외가 난다.
2026-03에 교사가 채점 도구를 만든 이야기를 실었다. 그 글에는 도구가 무엇을 근거로 점수를 줬는지가 없었다. 이번엔 직접 만들었다 — 모든 점수가 루브릭의 어느 갈래에서 나왔는지 달고 나오고, "3번에서 미끄러진다"는 답안에서 세어져 나온다.
2026-04에 어느 농부가 30년 치 손글씨 노트를 한 화면으로 옮긴 이야기를 실었다. 그 글의 심장인 "말하면 화면이 된다"에 실물이 0이었다. 현장은 실제 형태대로 구성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었다 — 그리고 "18일"은 소스 어디에도 없다. 기록에서 계산되어 나온다.
2026-01에 비개발자가 주말 오후에 회비 도구를 만든 이야기를 실었다. 그 글에는 화면도 정의도 과정도 없었다. 이번엔 직접 만들었고, 만드는 사람이 실제로 건드리는 것이 몇 줄인지 세었다 — 마흔다섯 줄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늘어나면 검증이 실패한다.
단독 사무소에 거래처 180곳. 세무사 윤재성 씨는 개발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매일 아침 그의 태블릿에는 '오늘의 마감'이 뜬다. 영수증을 읽고, 거래처 이력을 쌓고, 마감을 추리고, 안내문을 띄우는 그 화면을 — 그가 직접 만들었다. 코드 한 줄 없이.
예전엔 자료수집·정리·표 작성·검토·발송을 네댓 사람이 나눠 했다. 번역 회사 PM 한지연 씨는 이제 그 흐름 전체를 혼자 쥔다. 사람을 줄여서가 아니다 — 자기 도구로 자기 손을 늘려서다. 도구는 전문가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 손을 멀리 보낸다. 창간 6개월의 마지막 글.
봉화 비탈밭에서 한석규 씨가 40년간 적은 농사 노트는 흐린 연필 글씨로 멈춰 있었다. 아들 도진 씨가 그 마흔두 권을 같은 모양으로 옮기자, 멈춰 있던 경험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화면을 당연하게 보고 자란 손자는, 할아버지가 봄 아침의 공기로만 알던 것을 며칠 전에 내다보게 된다 — 한 집안의 노트가 3대에 걸쳐 자라는 이야기.
하루 환자 60명, 만성질환 재진이 절반. 가정의학과 원장 한도경 씨는 코드를 모른다. 그런데 그의 진료실 모니터에는 환자별 '지난 흐름'이 한 화면에 뜬다. 무엇을 먼저 묻고 무엇을 빠뜨리면 위험한지 — 그 흐름을 그가 직접 화면으로 옮겼다. 단, 진단이라는 도구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담당 4개 반 132명, 수행평가 답안이 주마다 쌓인다. 중학교 국어교사 한미정 씨는 개발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시험 다음 날 저녁, 그의 태블릿엔 '오늘 채점할 답안'이 기준 체크리스트와 함께 뜬다. 답안을 읽고, 같은 잣대로 보고, 점수를 받아 적고, 학생에게 설명까지 되는 그 화면을 — 그가 직접 만들었다. 코드 한 줄 없이.
비닐하우스 8동, 작물 6종, 농사 30년. 강원도 화천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정복산 씨(58)는 컴퓨터로 시세나 검색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휴대폰엔 매일 아침 '오늘 봐야 할 작물'이 뜬다. 헛간에 잠들어 있던 서른 권의 손글씨 노트가 — 물어볼 수 있는 한 화면이 됐다. 코드 한 줄 없이, 그가 직접.
거창하지 않다. 토요일 오후에 만든, 나만 쓰는 작은 도구 하나.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