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실증본이 있습니다. 같은 주제를 돌아가는 코드와 실제로 그려진 화면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 물어볼 수 있는 기록 — 노트 서른 권이 못 보여 준 것. 이 글은 쓰인 그대로 둡니다.
강원도 화천, 정복산 씨(58)의 비닐하우스는 새벽에 가장 분주하다. 토마토 줄기 사이로 김이 서리는 시간, 그는 하우스 8동을 한 바퀴 돈다. 예전 같으면 머릿속으로 "3동은 곁순 칠 때 됐고, 5동은 며칠 전에 약 쳤으니 됐고…" 하며 헤아렸을 길이다. 그런데 이날 그의 손엔 휴대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엔 '오늘 봐야 할 작물'이라는 목록이 떠 있었다. 작물 이름, 며칠째인지, 그리고 노란 표시 하나. 그는 화면을 한 번 쓸어 보고는 "오늘은 3동 토마토"라고 했다.
비닐하우스 8동, 작물 6종(토마토·오이·애호박·고추·상추·방울토마토), 농사 30년. 보통 이맘때면 일손을 두엇 더 써도 작물마다 언제 뭘 했는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혼자였고, 차분했다. 비결을 묻자 그는 휴대폰을 돌려 보여 줬다. "이 화면이요. 제가 만들었어요."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곤 가끔 시세를 검색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헛간에 노트가 서른 권 있었다고요. 예전엔 그걸 어떻게 보셨나요?
연필로 줄 공책에 썼죠. 매년 한 권씩. 모종 옮긴 날, 그날 날씨, 물 준 날, 약 친 날, 첫 수확 날. 어떤 해엔 짧게 한 줄 더 붙였어요 — "올핸 너무 일찍 옮겼다", "장마 길어서 무름병 왔다" 이런 거. 서른 권쯤 됐어요. 표지마다 연도 적힌, 제 농사 인생이죠.
빠뜨린 해는 거의 없어요. 충실했죠. 그런데 묘하게 쓸모가 반쪽이었어요. 다시 펼칠 때 그게 드러나요. "재작년 이맘때 토마토를 언제 옮겼더라?" 싶으면, 선반에서 재작년 노트를 꺼내 손가락에 침 묻혀 가며 한 장씩 넘겨요. 찾으면 다행이고, 연필이 흐려졌으면 창가로 가져가 한참 들여다보고. 어떤 메모는 어느 동 건지 안 적혀 있어서, 앞뒤 보고 짐작했어요.
더 답답한 건 비교였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옮기는 게 빨랐나?" 이걸 알려면 두 권을 나란히 펴 놓고 날짜를 맞춰 봐야 해요. 다섯 해를 보려면 다섯 권을 펴 놓고 눈으로 오가는 수밖에 없고. 30년 치 경험이 분명 그 선반에 다 있는데, 제가 그것에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거기 있되, 닿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도구를 만들었다. 농사짓던 분이 개발을 배운 건가요?
아니요. 그게 핵심이에요. 저는 코드를 못 써요. 키보드도 독수리 타법이에요. 제가 한 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한 것뿐이에요. 화면에 뭐가 떠야 하는지, 어떤 칸이 있어야 하는지, 오늘 뭘 먼저 봐야 하는지 — 그건 제가 30년 농사를 지어서 알아요. 그걸 컴퓨터가 알아듣게 옮기는 게 늘 벽이었는데, 그 부분을 makemind가 가져갔어요.
저는 화면을 그린 게 아니라 말한 거예요. 작물을 고르면 올해 기록이 죽 뜨게. 위엔 옮긴 지 며칠째인지 큼지막하게. 새 일 생기면 버튼 눌러 한 줄 추가하고, 날짜는 오늘로 자동으로. 이렇게 무엇을 어디에 보여 달라고 말로 적으면, 그게 화면이 돼요. 제가 디자인을 한 게 아니라, 필요한 걸 말했을 뿐인데요.
"저는 화면을 그린 게 아니라 말한 거예요. 밭에서 뭐가 중요한지는 제가 제일 잘 아니까. 그릴 줄 몰라도 말할 줄은 알잖아요."
그 화면 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줄 수 있나요?
그럼요. 사실 화면은 맨 끝이에요. 그 앞에 흐름이 있어요. 노트 한 줄이 들어오고, 작물별로 시간 순서로 쌓이고, 오늘 봐야 할 게 추려지고, 화면에 뜨고. 저는 그 흐름을 짠 게 아니라, 각 단계에 뭐가 들어가고 뭐가 나와야 하는지만 정했어요.
첫 단계, 기록은 어떻게 들어가나요?
밭에서 일하다 휴대폰 꺼내 버튼 한 번 눌러요. "3동 토마토, 곁순 정리" 이렇게. 날짜는 오늘로 알아서 채워지고, 며칠째인지도 옮긴 날부터 저절로 세요. 손에 흙 묻은 채로도 되니까, 예전처럼 일 끝나고 헛간 가서 노트 펴고 적던 걸 안 해도 돼요. 그 자리에서 한 줄.
서른 권 묵은 노트도 틈틈이 옮겨 넣고 있어요. 한 줄 한 줄 다 칠 필요는 없고, 굵직한 것들 — 옮긴 날, 첫 수확, "그해 무슨 일 있었다" 같은 메모 — 부터요. 그게 들어가니까 30년이 한 화면 안에서 이어지더라고요.
중요한 건 어느 동, 어느 작물의 기록인지가 같이 붙는다는 거예요. 예전엔 안 적어서 짐작하던 그 칸이요. 이젠 그게 늘 붙어 있어서, 나중에 "이거 어느 밭 거지?" 할 일이 없어요.
그 다음, 기록은 어디에 쌓이나요?
작물마다 기록이 시간 순서로 쌓이는 곳이 있어요. "3월 12일 옮김", "4월 1일 첫 물", "5월 3일 약", "5월 20일 첫 꽃" — 이렇게 줄줄이. 각 줄엔 어느 동에서 나온 건지가 달려 있고요.
이게 종이랑 결정적으로 달라요. 종이는 적는 것에서 멈춰요. 적은 걸 다시 꺼내 맞춰 보는 건 사람 기억하고 인내에 맡겨지죠. 그런데 같은 칸이 정해진 자리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물어볼 수 있는 게 돼요. "올해 물 준 날만 모아 줘." "작년이랑 올해 옮긴 날 나란히." 종이면 며칠 걸릴 게, 한 번 누르면 끝이에요. 올해 한 줄하고 작년 한 줄이 똑같은 모양이니까, 기계가 그 둘을 맞춰 주는 거예요.
여기서 작은 마법이 시작돼요. 적기만 하던 게, 같은 모양으로 줄을 서는 순간 불어나기 시작해요. 올해 기록 위에 작년 기록을 겹쳐 보면, 한 해만 보던 제가 못 보던 게 보여요. 종이로 30년을 써도 그건 안 보였어요. 노트가 다 달랐으니까 — 어떤 해는 날짜만 적고, 어떤 해는 메모가 길고, 어떤 해는 동을 안 적고. 모양이 제각각이라 겹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같은 칸으로 옮겨 두니까 비로소 겹쳐지고, 겹쳐지니까 패턴이 떠올라요.
그럼 '오늘 봐야 할 작물'은 어떻게 떠요?
매일 새벽에 6종을 한 번 훑어요. 옮긴 지 며칠 됐나, 물 준 지 며칠 지났나, 작년 이맘때 뭘 했었나. 제가 정해 준 이 기준으로 훑어서 오늘 손이 가야 할 걸 추려 줘요.
단순히 날짜만 세는 게 아니에요. 어제 화면에 "3동 토마토 — 옮긴 지 18일, 작년엔 이맘때 첫 꽃"이라고 떴어요. 며칠째인지만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작년 같은 시점엔 뭐가 있었는지까지 옆에 붙여 준 거예요. 제가 노트 두 권 펴 놓고 맞춰 봤으면 한참 걸렸을 걸, 먼저 짚어 주니까 저는 가서 확인만 하면 돼요.
이게 제가 새벽마다 보는 화면이에요. 위엔 오늘 손 가야 할 작물이 '며칠째' 칩이랑 같이, 아래엔 이번 주에 챙길 것 한 줄. 저 아래 카드 보이죠? "토마토 — 옮긴 지 18일째, 작년 첫 꽃 18~20일." 이것도 제가 일일이 센 게 아니라 알아서 추려 준 거예요. 5년 치가 쌓이니까 저런 게 보이더라고요. 옮기고 18일쯤에 늘 첫 꽃이 폈다는 거 — 종이로는 30년을 써도 못 찾던 걸, 같은 모양으로 쌓이니까 다섯 해 만에 저절로 드러났어요. 줄곧 느낌으로는 알았는데, 느낌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정리하면, 정 선생님이 한 일은 무엇이고 makemind가 한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한 건 판단이에요. 어떤 칸이 있어야 하는지, 뭘 먼저 봐야 하는지, 어떤 메모가 나중에 쓸모 있는지, 작년 어느 시점이랑 견줘야 하는지. 그건 30년 밭 한 사람만 알아요. 어떤 칸은 꼭 있어야 하고 어떤 칸은 없어도 되는지 — 그건 데이터시트에도, 농약 매뉴얼에도 없어요. 제 30년 안에만 있어요. makemind가 한 건 그 판단을 실어 나르는 일이고요.
| 단계 | 내가 정한 것 (30년의 판단) | 도구가 한 것 |
|---|---|---|
| 기록 입력 | 어떤 칸을 둘지 (동·작물·작업·메모) | 밭에서 버튼 한 번에 한 줄, 날짜·일수 자동 |
| 이력 축적 |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지 | 작물별 시간 순서·출처와 함께 보관 |
| 오늘 볼 것 | 무엇을 기준으로 챙길지 | 6종을 훑어 손 갈 작물·작년 비교 추림 |
| 발견 | 무슨 패턴을 의심할지 | 같은 모양 데이터에서 패턴이 드러나게 |
| 화면 | 무엇을 어디에 보일지 | 말한 대로 화면으로 렌더 |
저는 왼쪽 칸만 채웠어요. 오른쪽은 도구가 가져갔고요. 개발을 배웠다면 몇 달, 누구한테 부탁했다면 미안한 마음 몇 번이었을 일을 — 제 판단을 말로 옮기는 것만으로 했어요.
그럼 이게 농사를 대신해 주나요?
아니요. 그건 분명히 해 두고 싶어요. 이 화면이 토마토를 키워 주진 않아요. 곁순은 제가 쳐야 하고, 물때도 결국 제가 흙 만져 보고 정해요. "옮긴 지 18일이면 첫 꽃" 그건 경향이지 명령이 아니에요. 올해 봄이 추웠으면 22일에 필 수도 있고, 그날 하우스에 들어가서 줄기 보고 잎 보고 판단하는 건 여전히 제 몫이에요. 화면이 "오늘 3동 봐라" 해도, 가 보면 아직 멀었으면 안 쳐요. 그건 화면이 모르는 거니까.
기계가 짚어 주는 건 먼저 의심해 주는 것까지예요. 그 다음 진짜 판단은 사람이 해요. 30년 짓고도 매년 새로운 게 농사라, 도구가 그걸 대신할 수는 없어요. 다만 까먹지 않게, 놓치지 않게 받쳐 주는 거죠. 손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한가해지고, 정작 중요한 판단에 더 집중하게 되고. 딱 거기까지가 이 화면의 일이에요. 그게 적당한 거고요.
가장 크게 바뀐 건 뭔가요?
머리가 한가해졌어요. 예전엔 늘 뭔가 까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5동 물 준 지 며칠 됐더라", "고추 약 칠 때 지났나" — 이런 게 머릿속에 늘 떠다녔어요. 작물이 6종이고 동이 8개니까, 그걸 다 외우려니 머리가 꽉 찼죠. 지금은 새벽에 화면 한 번 보면 오늘 뭐가 급한지 다 떠요. 외우는 건 화면이 하고, 저는 흙만 보면 돼요.
그리고 30년이 안 흩어져요. 노트는 헛간에 잠들어 있으면 그냥 흐린 글씨 더미예요. 제가 떠나면 다음 사람은 거기서 제가 알던 것의 반의반도 못 건져요. 그런데 같은 모양으로 옮겨 두니까, 이건 다음 해가 물어볼 수 있는 게 됐어요. 우리 아들이 가끔 밭에 나오는데, 언젠가 얘가 이걸 물려받으면 — 제가 18일 패턴 찾았듯이, 제가 못 찾은 것까지 거기서 읽어 낼 거예요.
"예전엔 머릿속에 6종 8동이 늘 떠다녔어요. 지금은 새벽에 화면 한 번 보면 돼요. 머리가 한가해지니까, 정작 흙 보는 데 더 집중이 되더라고요."
다른 농부에게 권한다면?
거창하게 시작하지 말라고요. 저도 처음부터 이걸 다 만든 게 아니에요. '작물 고르면 올해 기록 뜨는' 화면 하나부터 시작했어요. 그게 되니까 버튼으로 한 줄 추가하는 걸 붙이고, 며칠째 세는 걸 붙이고, 작년 비교를 붙이고 — 한 칸씩 늘렸어요. 주말 오후에, 부담 없이.
핵심은 이거예요. 당신이 제일 잘 아는 건 당신 밭이지 컴퓨터가 아니다. 그 잘 아는 걸 말하기만 하면 돼요. 회비 장부든, 출하 기록이든, 동네 작목반 출석부든 — 너무 작아서 시장에 안 나오고, 너무 내 식이라 남이 만든 게 딱 안 맞는 것들 있잖아요. 그동안 그냥 참던 것들. 그릴 줄 몰라도 말할 줄은 알잖아요. 저처럼 독수리 타법인 사람이 만든 화면이, 지금 제 하우스 8동을 받치고 있어요.
makemind.dev 「현장」 — 도메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기 도구를 자기 손으로. 정복산 씨의 재배 노트는 코드가 아니라 30년의 판단으로 지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