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도메인 전문가의 시대

작성: makemind · 2026년 6월 4일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언가를 디지털 도구로 만들고 싶은 사람과 그 도구 사이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다. 개발자다. 그 자리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 자동차를 정비공에게 맡기듯, 도구는 만드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 분업을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였다. 일을 아는 사람과 도구를 만드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그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바로 요구사항명세서외주 계약서라고. 그러나 이 매거진이 여섯 호에 걸쳐 한 일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그 한 사람이 서 있던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기술의 사건이 아니다. 사람의 자리가 바뀌는 사건이다.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도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옮겨 간다. 이 글은 그 한 문장이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우리가 6개월 동안 만난 진짜 사람들의 손끝에서 되짚는다. 추상에서 출발하지 않겠다. 사람에서 출발해, 사람으로 끝낼 것이다.

책상에서 일하는 전문가 — 무엇을 만들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제 앞에 선다
책상에서 일하는 전문가 — 무엇을 만들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제 앞에 선다

오랜 순서

먼저 우리가 떠나려는 그 순서를 정확히 그리자. 변호사가 상담 기록 도구를 원하면, 자기 일을 개발자에게 설명해야 했다. 농부가 30년 치 밭의 기록을 화면으로 만들고 싶으면, 개발자를 찾아 부탁해야 했다. 교사가 채점 기준을 도구로 만들고 싶어도, 그 기준을 요구사항 문서로 번역해 넘겨야 했다. 도메인을 아는 사람은 늘 뒤에서 설명하는 자리에, 개발자는 늘 앞에서 만드는 자리에 있었다.

이 순서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손실이 있었다. 도메인의 미묘함은 옮기는 동안 닳는다. "이런 경우엔 좀 다른데요", "여기선 이걸 먼저 봐야 해요" 같은 뉘앙스가 — 설명을 거치고, 요구사항 문서를 거치고, 개발자의 해석을 거치고, 일정과 예산의 타협을 거치며 — 조금씩 마모된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직접 만들지 못했고,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은 알지 못했다. 그 사이에 항상 이 있었다. 다 만들고 나서 "이게 아닌데"가 나오는 자리, 두 번째 버전을 기다리며 또 몇 달이 가는 자리.

우리는 그 틈을 비용으로 셈하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거니까." 만들 수 없는 도구는 아예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너무 작아서, 나 혼자 쓸 거라서, 개발자를 부르기엔 민망해서 — 그렇게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진 도구들이, 모든 전문가의 책상 서랍 안에 한 무더기씩 있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직접 만들지 못하고,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알지 못했다. 그 틈이 거의 모든 도구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순서가 뒤집히는 이유

이 매거진이 호마다 보여 준 것은, 사실 그 오랜 순서를 뒤집는 한 조각씩이었다. 흩어져 보이던 조각들을 이제 한자리에 맞춰 보자.

「설치 없는 앱의 시대」는 만든 것을 사용자에게 보내는 사슬 — 빌드·심사·설치·업데이트 — 을 통째로 들어냈다. 「우리는 왜 컴파일을 버렸나」는 화면을 얼음에서 액체로 바꿨다. 자주 바뀌어야 할 것을 더는 가장 바꾸기 어려운 곳(컴파일된 기기 안)에 얼려 두지 않는다. 「기반은 이미 있다」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8할이 도메인 지식이고, 빠진 2할의 벽이 결정적으로 낮아졌음을 보였다. 「모든 서버가 앱이다」는 이미 굴러가던 시스템이 곧 앱이 됨을 보였다. 그리고 「경험은 증식한다」는 그렇게 만든 것이 한 번 만들고 멈추지 않고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보였다.

이 다섯 조각이 합쳐지면 하나의 결론이 된다. 만드는 일이 더는 '개발자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화면이 얹는 한 축으로 가벼워지고, 빠졌던 2할이 짓는 일이 아니라 얹는 일이 되면 — 8할을 이미 가진 사람이 직접 앞에 설 수 있다. 도메인 전문가가 뒤에서 설명하던 자리에서, 앞에서 만드는 자리로 걸어 나온다. 설명을 거치며 닳던 미묘함이, 이제 닳지 않고 곧장 도구가 된다.

수십 년 동안 도메인 전문가는 뒤에서 설명하고, 개발자는 앞에서 만들었다. 그 순서가 뒤집힌다. 무엇을 만들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제 앞에 선다.

이것이 이 매거진 6개월의 한 문장이다. 그러나 문장으로만 두면 또 하나의 그럴듯한 비전에 그친다. 우리가 이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건, 그 문장이 이미 사람의 손끝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추상으로 두지 않기 위해, 이 여섯 호가 실제로 데려온 사람들을 불러오자. 이들은 비유가 아니다.

강원도 화천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정복산 씨(58)는 컴퓨터로 시세나 검색하던 사람이었다. 비닐하우스 8동, 작물 6종, 농사 30년. 헛간엔 30년 치 손글씨 농사 노트 서른 권이, 언젠가 다시 펼칠 일 없이 먼지를 쓴 채 잠들어 있었다. 거기엔 "올해 3번 동 토마토가 7월에 무름병"이라는 식의, 오직 그만이 읽고 그만이 뜻을 아는 기록이 가득했다. 그는 코드를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매일 아침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았다 — 어느 동의 어느 작물을, 며칠 전 기록과 견주어, 무슨 신호를 놓치면 안 되는지를. 지금 그의 휴대폰엔 "오늘 봐야 할 작물"이 뜬다. 호미 대신 그 화면 하나를 들고 새벽 하우스를 돈다. 죽어 있던 서른 권의 노트가, 비로소 물어볼 수 있는 한 화면이 됐다.

중학교 국어교사 한미정 씨는 4개 반 132명의 수행평가 답안에 매주 깔렸다. 그는 개발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같은 잣대로 채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20년째 알고 있었다. 그 기준을 화면으로 옮기자, 시험 다음 날 저녁 태블릿엔 "오늘 채점할 답안"이 체크리스트와 함께 떴다. 그는 자정을 되찾았다.

가정의학과 원장 한도경 씨는 코드를 모른다. 그러나 만성질환 재진 환자를 볼 때 무엇을 먼저 묻고 무엇을 빠뜨리면 위험한지, 그 흐름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그 흐름만 화면으로 옮겼다. 그리고 진단이라는 도구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 사람에게 남겨야 할 것을 아는 것, 그것도 도메인 지식이다.

단독 사무소에 거래처 180곳을 쥔 세무사 윤재성 씨는 매일 아침 "오늘의 마감"이 뜨는 화면을 직접 만들었다. 어느 거래처가 어떤 신고를 며칠 남겼는지, 무엇을 빠뜨리면 가산세가 붙는지 — 영수증을 읽고, 거래처 이력을 쌓고, 마감을 추리고, 안내문을 띄우는 그 흐름은, 어떤 개발자도 처음부터 알 수 없고 오직 그만이 손끝으로 아는 것이었다. 외주를 줬다면 그 미묘함의 절반은 첫 회의에서 이미 닳았을 것이다.

번역 회사 PM 한지연 씨는 예전엔 네댓 사람이 나눠 하던 수집·정리·표 작성·검토·발송의 흐름 전체를, 자기 도구로 혼자 쥔다. 사람을 줄여서가 아니라, 자기 손을 늘려서다. 도구는 그를 대신하지 않았다. 그의 손을 더 멀리 보냈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개발자가 되지 않았다. 누구도 새 직업을 얻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자기가 이미 가장 잘 알던 것을 — 30년의 밭, 20년의 채점, 매일의 진료 흐름, 180곳의 마감 감각 — 앞으로 가져왔을 뿐이다. 빠졌던 한 축, 그러니까 화면은, 짓는 것이 아니라 얹는 것이 되어 있었다.

코드 한 줄 없이, 그가 직접. 이 한 문장이 여섯 명에게서 똑같이 반복됐다는 것 — 그게 이 매거진이 발견한 전부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30년 전에도 자기 일을 가장 잘 알았다. 정복산 씨의 밭은 그때도 거기 있었고, 한미정 씨의 채점 기준은 그때도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그들이 앞에 서는가.

답은 빠졌던 한 축의 물성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도구를 만드는 일은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했다 — 무엇을 만들지 아는 일(도메인), 그리고 그것을 기계가 알아듣게 짓는 일(화면과 코드). 앞의 8할은 정복산 씨에게 이미 차고 넘쳤다. 그를 막은 것은 늘 뒤의 2할이었다. 그리고 그 2할은 짓는 일이었다 —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화면을 코드로 짜서 기기 안에 단단히 굳히는 일. 그 일은 평생을 들여 배워야 하는 다른 직업이었다.

이 매거진이 여섯 호에 걸쳐 추적한 변화의 핵심이 바로 여기다. 그 2할이 짓는 일에서 얹는 일로 바뀌었다. 화면이 기기 안에 굳는 벽돌이 아니라, 서버 위에 가볍게 얹는 정의가 되면서 — "무엇을 보여줄지"를 말하는 것만으로 화면이 선다. 코드를 짜서 굳히지 않아도 된다. 짓는 데 필요했던 그 평생의 기술이, 더는 입장료가 아니게 된 것이다. 정복산 씨가 넘지 못하던 벽이 사라진 게 아니라, 말로 넘을 수 있는 높이로 낮아졌다.

그래서 8할을 가진 사람이 마침내 2할을 직접 얹는다. 두 사람의 일이던 것이, 한 사람의 일이 된다. 30년 전이 아니라 지금인 이유는 그것뿐이다 — 막던 한 축이, 짓는 것에서 얹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무엇을 뒤집는가 — 무른 것의 복권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건 "이제 모두가 개발자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정반대다. 개발자가 되지 않고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코딩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만드는 데 코딩이 덜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정복산 씨는 SQL을 배운 적이 없고, 한미정 씨는 끝내 함수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게 핵심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오랫동안 무른 것으로 취급되던 무언가가 다시 단단해진다 — 도메인을 깊이 아는 것. 농부의 30년, 교사의 채점 기준, 의사의 진료 흐름, 세무사의 마감 감각, 번역가의 품질 눈. 한때 "그건 기술이 아니잖아", "그건 그냥 경험이잖아", "그건 누구나 시간 들이면 하는 거잖아"라며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있던 그 두꺼운 것이, 이 시대에선 도구의 핵심 자산이 된다.

이건 결코 작은 복권이 아니다. 기술의 시대 내내, 도메인 경험은 개발자에게 설명해 넘겨야 할 입력값으로만 취급됐다. 두꺼운 경력은 회의실에서 존중받았을지언정, 도구를 만드는 자리에서는 늘 한 다리 건너 있어야 했다. 이제 그것이 앞에 선다. 그리고 한번 앞에 서면, 셈법이 완전히 뒤집힌다.

지난 순서바뀐 순서
도메인을 아는 사람뒤에서 설명 (입력값)앞에서 직접 빌드 (자산)
만드는 행위개발자가 짓는다전문가가 얹는다
미묘함옮기는 동안 닳음닳지 않고 곧장 도구로
두꺼운 경력회의실에서만 존중가장 강한 빌더의 무기
작은 도구부르기 민망해 포기본인이 십 분에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빌더가 된다 — 기반이 두꺼울수록, 경력이 길수록. 빠진 한 축(화면)은 누구에게나 거의 같은 두께지만, 가진 기반은 그 사람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30년 한 사람이 3년 한 사람보다 유리해진다. 적어도 이 시대에는, 오래 한 것이 손해가 아니라 복리가 된다.

정직하게

비전의 글일수록 한계에 정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게 공허한 선언이 된다.

개발자가 사라진다는 게 아니다. 단단해야 하는 것 — 런타임, 프로토콜, 실시간 제어, 보안의 깊은 층, 복잡한 알고리즘, 대규모 데이터의 밑바닥 — 은 여전히, 그리고 더욱, 개발자의 영역이다. 그래야 한다. 정복산 씨의 화면이 매끄럽게 뜨는 것은, 그 아래에서 누군가 그리는 엔진을 단단히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바뀌는 건 표면이다. 도메인 전문가가 자기 도구를 만들기 위해 넘어야 했던 그 표면이, 이제 그들의 것이 된다. 어려운 기반은 더 깊어지고, 만드는 표면은 더 넓게 열린다. 둘은 경쟁이 아니라 분업이다 — 개발자는 더 깊은 곳을 파고, 전문가는 자기 표면을 짓는다. 깊이가 넓이를 떠받친다.

그리고 모든 도구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큰 시스템, 정교한 제품, 수백만이 동시에 쓰는 서비스는 여전히 전문 개발이 필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시대가 새로 여는 것은 그 사이에 있던 무수한 작은 도구들 — 자기 일에 딱 맞는, 자기만 쓰는, 그동안 만들 수 없어 참아 온 것들 — 의 자리다. 정복산 씨의 화면 하나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화면이 농부의 수만큼, 교사의 수만큼, 의사와 세무사와 번역가의 수만큼 생겨난다면 — 그 작은 것들의 합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그 합이, 큰 제품 몇 개보다 더 두껍게 세상을 덮는다.

한도경 씨가 진단 도구를 일부러 만들지 않은 것도 같은 정직함의 한 면이다. 무엇을 도구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에게 남길지 — 그 경계를 긋는 일은 화면이 쉬워졌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다 만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가 도구의 일이고 어디부터가 사람의 판단인지, 그 선을 아는 것 역시 도메인 전문가의 몫이다. 쉬워진 것은 만드는 손이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책임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건 마법이 아니다. 정복산 씨도 한미정 씨도, 처음엔 막혔고 다시 시도했다. 자기 머릿속 흐름을 화면의 언어로 바꿔 말하는 법은 익혀야 했다. "오늘 봐야 할 작물"이라는 한 줄이 화면이 되기까지, 그는 자기 노트가 왜 그렇게 적혀 있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했다. 다만 그 익힘이,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를 처음부터 배우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을 뿐이다. 벽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넘을 만한 높이로 낮아진 것이다. 정직하게는 그 정도다. 그리고 그 정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

끝이 아니라 시작

이 호는 창간 6개월의 마지막 호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도메인은 끝없이 많고, 자기 도구를 만들 사람도 끝없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여섯 호에서 데려온 자리들 — 화면 없이 동작하던 칩, API 없던 계측기, 손대지 못하던 블랙박스 영상, 30분 만에 만든 설비 화면, 그리고 정복산·한미정·한도경·윤재성·한지연, 3대에 걸쳐 노트를 물려준 한 집안 — 은 시작의 몇 사례일 뿐이다. 빙산의 한 조각이다.

당신의 도메인은 이 매거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우리가 농부와 교사와 의사와 세무사와 번역가를 부른 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어서다. 당신의 일에도 정복산 씨의 서른 권 같은 무언가가 있다. 머릿속에만 있어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한 흐름, 매번 손으로 되풀이하던 판단, 만들고 싶었지만 부르기 민망해 접어 둔 작은 도구. 가장 잘 아는 자리는 당신이 알고, 빠진 한 축은 이제 짓는 게 아니라 얹는 것이다.

이 매거진이 한 일은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뿐이다.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는 것도, 거기서 실제로 만드는 것도 — 앞에 선 당신이다. 그리고 막히는 자리가 생기면, 같은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있다. 정복산 씨가 그랬고, 한미정 씨가 그랬다. 그들도 처음엔 "내가 이걸 어떻게"라고 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만드는 사람"과 "아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라고 믿어 왔다. 이 매거진이 6개월 동안 보여 준 것은, 그 둘이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도구가 가장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매거진은 끝이 아니라, 그 시작을 가리키는 첫 표지였다. 이제 앞에 설 차례다.


makemind.dev 「탐구」 — 「도메인 전문가의 시대」 호의 여는 글이자, 창간 6개월을 닫는 글입니다. 무엇을 만들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앞에 서는 시대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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